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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정리

한국사, 한능검, 공무원, 사학, 방통 등 한국문화와 유물유적 요점 정리 8. 유교문화의 유물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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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유교문화의 유물유적


1. 유교문화와 유물유적
1) 유교
(1) 유학에 기반을 둔 생활이나 의례
(2) 유학 : 공자, 맹자의 학문
(3) 유교의 전래

삼국 조선시대 16세기 이후
전래 학문이나 가치체계로 정착 우리 삶에 내면화되고 생활화

(4) 유교문화 : 유교와 관련된 문화 일반

 

2) 유교문화
(1) 유학자들의 생활이나 학문적 실천에서 생산해 낸 다양한 형식의 산물

 

3) 유물유적
v 당시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들었던 크고 작은 생활도구나 건축물

유물 유적
크기가 작고 쉽게 옮길 수 있는 것 상대적으로 커서 옮기기 어려운 것
화살촉, 그릇 등 무덤, 건물, 성벽 등

(1) 대상
- 조선시대 양반들이 유교적 가치와 형식에 따라 개인이나 가족,
종종 단위에서 만들어 낸 다양한 삶의 형태
- 동성마을 : 하나의 성씨가 마을의 주도권을 가지고 세거하는 마을
- 건물 : 종가와 같은 주거 공간 누, 정, 사당과 같은 학문과 휴식
또는 조상을 위한 공간

 

1. 유교문화를 설명하는 내용을 맞지 않는 것은? 2
① 유교는 유학에 기반을 둔 생활이나 의례를 말한다.
② 유교는 삼국시대부터 우리 삶에 내면화되었다.
X 조선
③ 현재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은 아직도 유교적이다.
④ 유교문화의 담당자는 양반과 선비였다
【해설】 조선시대는 유교를 기반으로 한 사회였고 조선 시대 이전
고려까지는 불교를 숭상하는 사회였다.


2. 유교문화의 담당자들, 양반과 선비
v 조선사회는 양반사회, 양반이란 선비(士)와 통용(유래는 다름)

양반 선비
유교문화의 주체이자 담당자 유래-공맹(孔孟)의 학문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
유래-고려시대의 문반과 무반

1) 양반
(1) 조선시대에 들어와 지배 신분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
- 조선사회를 양반사회라고 함
(2) 학문적으로는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
- 유자, 유생, 유림
(3) 국가기관을 장악하고 국정을 운영하는 관료로 존재하기도 함

 

2) 선비
(1)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혈연집단의 한 구성원
(2) 양반 또는 사족이라는 신분으로 존재
(3) 선비들의 집단이 형성되면서부터 사림이라는 말 등장
-성종 때부터 훈구 세력과 대립하는 정치세력이 되면서 사림파로 불림

 

3) 조선시대의 신분구조


4) 양인

양인(良人) 양반-벼슬에 나아간 사람
사족-이작 관직에 오르지 못한 예비 관료
천인(賤人)  

(1) 양인 층 가운데 상층에 속한 사람들이 점차 경제적, 사회적, 정
치적 특권을 장악하여 특권적 양반 신분으로 성장
- 평민과 차별적 존재
(2) 조선초기의 양인층 내부 개방적
(3) 조선후기 양반들은 반상제를 확립하여 ‘양반과 상놈’의 관계를
폭넓게 형성
-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체제를 유지하는 길

 

5) 신분제 변화
(1) 농업과 상업의 발전을 토대로 18~19세기 신분제는 크게 동요
(2) 부를 축적한 하층민은 신분 차별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방법으
로 노력을 전개
(3) 왕조의 몰락으로 수명을 다했으나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오늘
날까지 ‘양반, 상놈’에 대한 의식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음
2. 조선시대의 특권층이자 지배 신분층은? 4
① 상민(常民) ② 상한(常漢) ③ 중인(中人) ④ 양반(兩班)


3. 동성마을, 유교적 모듬살이
1) 동성마을
v 우연적 산물이 아닌 유교적 이념에 기초하여 형성된 유교문화의 전형적인 산물

(1) 양반들은 서울을 제외하고는 농촌 지역에서 같은 성씨끼리 모여
살았다.
(2) 17세기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전형적인 마을 형태
(3) 오늘날 동성마을은 읍치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 향촌(조선)

 

2) 향촌의 형성과정
(1) 조선시대의 향촌 개발과 마을 형성은 재지사족(在地士族)의 등장
과 때를 같이함
(재지사족-조선시대 향촌사회에 머물러 있던 지식계층)
v 재지사족 : 고려시대 지방 행정 실무자 향리 가문에 뿌리를 둠
- 향리와 다른 행보 : 행정실무-> 성리학,
지방 향리직-> 과거를 통한 중앙정계 진출
(2) 산간벽지에 형성 : 사족들이 새로운 경제적 기반 확보와 향리와
의 차별화를 위해 읍치를 벗어나 외곽 촌락으로 이주
(3) 읍치의 외각에 마을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음
- 개간에 필요한 노동력과 농업 기술이 필요
- 사족은 노비를 소유, 논농사와 모내기 기술을 확보
(4) 향촌 지역에 형성되기 시작한 마을이 바로 동성마을이 된 것은 아님
- 마을의 양반사회에서 아들들은 대부분 처가로 떠났고, 사위와
외손들이 들어와 마을에 다양한 성씨들이 살았음
(5) 16세기를 거쳐 17세기에 이르러 조선 양반사회의 혼인제도에 큰
변화가 일어나 우리 고유의 혼례인 남귀여가혼이 중국의 유교적
혼인인 친영례로 바뀜
(6) 상속은 적장자 중심의 상속제도로 변화
v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종법이 자리 잡고 있었다.
3. 동성마을에 대한 설명으로 잘못된 것은? 4
① 유교문화의 진전과 함께 형성되었다.
② 부계혈통의 친족집단 형성과 관계가 있다.
③ 18~19세기를 거치며 보편적 마을 형태로 자리 잡았다.
④ 대부분은 읍치와 중심지에 위치하였다.
X 외각
【해설】 사족들이 새로운 경제적 기반 확보와 향리와의 차별화를
위해 읍치를 벗어나 외곽 촌락으로 이주


3) 종법(宗法)
(1) 조상의 제사를 장자가 받들어야 한다는 것
(2) 유교적 이념과 규범이 16세기부터 수용되어 일반화되면서 아들을
중시하는 풍조 만연
(3) 재산이 아들 중심으로 상속되고, 아들들이 혼인 후에도 처가로
떠나지 않게 되어 한 마을에 부계혈통의 친족집단이 형성
(4) 동성마을은 유교문화의 진전과 함께 발전하여 18~19세기를 거치
면서 보편적 마을의 형태로 자리 잡음

 

4. 유교문화의 핵심, 종가
v 조선 후기에 동성마을이 발달하면서 가문, 문중, 종중과 같은 친
족조직이 발달-> 서로 경쟁
1) 종가
(1) 장자에서 장자로 이어져 온 집이며, 시조로부터 시작되는 조상의
제사를 받든다.
(2) 종족 질서는 16세기 이후 종법이 수용되면서 형성
(3) 종족집단의 중심적 존재로 기능하는 종손이 거주하는 집
(4) 종가는 건축물로서는 유교 이념을 반영하며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전형을 보여 줌

 

사랑채 남자들의 생활공간, 개방적
안채와 안마당 여성들의 생활공간, 폐쇄적
행랑채 대문과 연결되어 담장 역할, 하인들의 생활 공간
곡간채 곡식저장
고방채 생활용구와 물품 보관
서고 책 보관

(5) 동성마을은 종가를 중심으로 형성
4. 종가에 대해서 잘못 설명한 것은? 3
① 종가는 종족의 정신적 중심으로 기능하였다.
② 종가는 시조부터 시작되는 조상을 제사 지냈다.
③ 종가는 동성마을의 형성과 관련이 없다.
X
④ 종가는 장자에서 장자로 이어져 온 집이다.
【해설】 동성마을은 종가를 중심으로 형성
5. 종가의 건축 구조에서 여성들의 생활공간은? 3
① 사랑채 ② 행랑채 ③ 안채 ④ 서고
【해설】 사랑채-남성 / 행랑채-노비 / 서고-책 보관
7. 종가의 건축 구조를 바르게 설명한 것은? 2
① 사랑채는 폐쇄적이고 내밀한 공간 구성을 갖는다.
X 안채
② 유교적 이념과 신분제적 가치에 기반 하였다.
③ 종가에서 사랑채는 사당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
X 낮은
④ 하인들은 종가의 안채에서 생활한다. X 행랑채


2) 사당
(1) 조상의 신위를 모시는 공간
- 양반가에서 가장 중시되는 특별한 공간
(2) 고조부까지의 신위 외에도 불천위(不遷位)가 더 존재
(3) 조선후기에 종법이 일반화 되면서 뛰어난 조상을 불천위로 모심
-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북부지역에서는 불천위 조상을 모
시고 있어야 종가가 된다고 생각함
(4)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공간으로 바뀌어 오늘날에는 종가에서만
있을 수 있는 건물이 되었다.
(5) 사당은 사랑채보다 높은 위치에 두어 조성을 높임
- 사랑채는 마당이나 행랑채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 하인들은 상
전을 우러러 보고 상전은 노비들을 내려다 봄
(6) 양반집의 구조는 유교적 상하차별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실천
v 종가나 큰 양반집, 양반들의 건물에는 곳곳에 당호(堂號)를 붙였
다. 옛 사람들은 여유당, 사임당, 운현궁 등 자신의 뜻이나 취향
을 담은 이름을 붙였고, 이 이름을 호(號)를 삼기도 함
6. 양반가에서 조상의 신주를 모시던 특별한 공간은? 1
① 사당 ② 곡간 ③ 중정 ④ 고방
【해설】 곡간-곡식저장 / 중정-마당의 한 가운데 /
고방-생활용구와 물품 보관


5. 유교문화의 유물들
1) 문집류
(1) 감정과 생각을 표현
- 일기, 시문, 간찰, 제문(죽은 이를 조문), 국가 정책에 대한 의견 정리

 

2) 고문서(옛날 문서)
v 일상생활의 필요에 따라 작성 된 문서
(1) 매매문서 : 토지나 노비를 사고 팔 때 작성된 문서
- 파는 사람이 작성해서 사는 사람에게 줌 (not 공동 작성)
- 언제, 무엇을, 얼마에, 왜 파는지, 파는 사람이나 증인, 문서
작성자 기록
- 직역 : 이름표기 시 자신이 국가에 대해 어떤 의무를 지니고 있
는지 기록
- 신분에 따른 확인 방법 다름 : 도장-왕, 양반남자-서명,
평민과 노비-손도장
(2) 분재기 : 부모의 재산 상속에서 아들과 딸이 받았던 대우 확인 가능
-
 아들 딸 차별 X, 제사-자녀 윤회 봉사,
- 16~17세기에 아들딸의 관계 변화
8. 조선 양반사회의 재산 상속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고문서는? 4
① 상량문 ② 상소문 ③ 책문 ④ 분재기


6. 유교문화의 유적들
1) 교육시설-서당, 향교, 서원
(1) 서당
-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교육시설
- 역사 : 고구려
- 공식적인 학교제도X, 정규과목X, 건물확보X, 선생님 자격 X
- 사랑방, 대청, 누정, 재실에 어린 자제들을 모아 글을 가르침
- 훈장은 학식이 있는 집안 어른이 맡으면 됨
- 학생만 있다면 서당 교육 가능
- 규모가 큰 양반마을에서는 별도의 서당 건물에서 일정한 수준
을 갖춘 학생들을 교육하여 도산서원처럼 훗날 서원으로 발전
9. 양반사회의 교육시설에 대한 설명으로 잘못된 것은? 2
① 양반사회의 교육시설로 서당, 향교, 서원이 있다.
② 서당은 공식 학교제도로서 정규 교과목을 가르쳤다.
③ 서당은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교육시설이었다.
④ 규모가 큰 양반마을은 별도의 서당 건물을 갖추기도 하였다.
2) 휴식 공간 누정, 정사
(1) 누정
- 경치를 관망하거나 휴식, 개인독서 학문을 위해 다양한 건물 조성
- 누(樓), 정(亭), 당(當,) 대(臺), 각(閣), 헌(軒)
- 누 : 2층 정도 높이의 큰 규모 / 정 : 작은 규모
(2) 정사
-마루와 방, 별도의 살림채와 대문채를 두어 겨울철에도 기거 가능
- 손님맞이, 후진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능 겸비
(3) 누정, 정사
- 누정, 정사 모두 남자들의 공간
- 동성마을이나 양반가문에서 지체가 높은 사람, 곧 관직이나 학
문이 높은 사람만 특별히 지을 수 있음(돈이 있어도 못 지음)
- 정자의 수 = 마을의 격
- 유교가 성했던 경상도, 특히 안동에 많음
10. 유교문화 유적 가운데 경치를 관망하고 휴식을 위해 지어진 공
간은? 1
① 누정(樓亭) ② 재실(齋室) ③ 재사(齋舍) ④ 서고(書庫)


3) 조상신을 모시는 공간-묘지, 재실, 재사, 사당
(1) 재사, 재실

- 조상을 추모하거나 제향하기 위한 건축물로 묘소나 사당 인근
에 위치
- 묘직 또는 산직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거주하며 제사를 위해 마
련된 제위전을 경작하여 제수 마련
(2) 조선시대 고위 관료를 역임한 인물 묘소에는 여러 석물들이 있다.
- 망주석, 상석, 향로석, 묘비, 신도비, 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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