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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도사, 사주, 철학과, 동양철학, 방통대 교양 등 동양철학 요점 정리 9. 주희의 철학2: 본성과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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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주희의 철학2: 본성과 이치

1. 성즉리론(性卽理論)

- ‘성즉리(性卽理)’: ‘본성은 곧 이()이다[性卽理].’ 이기론(理氣論)은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인간 역시 운동의 힘인 ()’가 따르는 원리인 ()’로 이루어져 있음. ‘는 인간의 본성을 이룸.

본성은 곧 이()이다[性卽理]. 하늘이 음양과 오행으로 만물을 변화시키고 생성시킬 때 기()로써 형체를 이루는데, () 역시 거기에 부여된다. 그것은 명령과도 같다.(性卽理也. 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 氣以成形而理亦賦焉, 猶命令也.)—󰡔중용장구(中庸章句)󰡕

-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 ‘소이연지고란 그렇게 된 이유나 까닭을, ‘소당연지칙은 당연히 그러한 법칙, 또는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원칙을 의미함. ‘()’는 이 두 가지를 겸하고 있음.

세상의 만물은 반드시 각각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소당연지칙(其所當然之則)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라는 것이다.(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대학혹문(大學或問)󰡕

- 인간관계의 ()’: ‘는 인간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됨. ‘윤리(倫理)’.

사람이 생겨나는 것은 이()와 기()가 결합했기 때문이다. [] 사람이 말하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기()의 활동이지만, 그 속에 이()가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활동이] (), 공경[], (), (), ()()()() 같은 것들로 표출되는 것은 모두 이() 덕분이다.(人之所以生, 理與氣合而已. [] 凡人之能言語動作, 思慮營爲, 皆氣也, 而理存焉. 故發而爲孝弟忠信仁義禮智, 皆理也.)—󰡔주자어류󰡕 4

- 지로서의 ()’: 인간의 본성을 이루는 인지의 는 우주로부터 온 것. 특히 우주가 만물을 부단히 생성시키는 것은 사랑의 원리인 ()’을 따르기 때문.

“‘()이란 하늘과 땅이 만물을 생성시키는 마음으로, 사람은 그것을 얻어서 태어난다.(仁者天地生物之心而人得以生者.)—󰡔중용장구󰡕

 

2.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

- ‘()’의 편차와 ()’: 만물은 모두 를 똑같이 가지고 있지만, ‘를 똑같이 실현하는 것은 아님. 그 원인은 각 존재를 구성하는 의 차이에 있음. ‘에는 어둠과 밝음[‘혼명(昏明)’], 맑음과 탁함[‘청탁(淸濁)’]의 편차가 있음. 인간은 순수하고 정제된 를 가지고 있어 본성인 를 지각하여 따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로 이루어진 사물들은 를 지각할 능력이 떨어짐. 인간들 사이에도 의 편차는 존재함.

정제되어 있느냐 조잡하냐 하는 관점에서 말한다면, 인간은 특별히 올바르고 두루 통하는 기()를 얻었고, 사물들은 치우치고 꽉 막힌 기()를 얻었다. 오직 인간만이 올바른 기()를 받았기 때문에 이 이()가 막힌 곳 없이 두루 통하게 되고, 사물들은 치우친 기()를 얻었기 때문에 이 이()가 막혀서 지각과 인식 능력이 없는 것이다. [] 그러나 인간이 받은 기()를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거기에는 어둡고 밝음, 맑고 탁함의 차이가 있다. 최상의 지혜, 타고난 지혜를 가진 사람은 맑고 밝고 순수하여 조금의 어두움이나 탁함도 없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알아 특별한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타고난 지혜에 버금가는 것으로 반드시 배운 이후에 알게 되고 반드시 실행해본 뒤에 도달하게 된다. 그 다음은 자질이 치우치고 또 가려진 부분이 있어 남이 한번 하면 나는 열 번, 남이 열 번 하면 나는 백 번하는 식으로 열심히 공부한 뒤에야 비로소 타고난 지혜에 버금가는 경지에 이르는 경우이다. 이런 사람도 쉬지 않고 정진하면 성과를 이룬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이다.(自精粗而言, 則人得其氣之正且通者, 物得其氣之偏且塞者. 惟人得其正, 故是理通而無所塞; 物得其偏, 故是理塞而無所知. [] 然就人之所稟而言, 又有昏明淸濁之異. 故上知生知之資, 是氣淸明純粹, 而無一毫昏濁, 所以生知安行, 不待學而能, 如堯舜是也. 其次則亞於生知, 必學而後知, 必行而後至. 又其次者, 資稟旣偏, 又有所蔽, 須是痛加工夫, 人一己百, 人十己千, 然後方能及亞於生知者. 及進而不已, 則成功一也.)—󰡔주자어류󰡕 4

- ‘본연지성(本然之性)’[‘천명지성(天命之性)’]기질지성(氣質之性)’: 동일한 ()’도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음. 를 매개로 하기 이전의 순수하고 완전한 ,②의 의존하고 제약 받아서 불완전하게 실현되는 ’. 본성 역시 두 가지 측면을 가짐. 에 제약되지 않은 본래 그대로의 본성인 본연지성(本然之性)’ 또는 우주가 우리에게 명령한 그대로의 본성인 천명지성(天命之性)’, 의 질, 즉 기질(氣質)에 영향을 받아 불완전하게 실현되는 본성인 기질지성(氣質之性)’. 기질이 탁하고 무거운 사람은 본연지성을 가리는 사욕(私欲)’ 즉 사사로운 욕구에 빠지기 쉬움. 주희는 본연지성의 회복을 주장하면서, 우주의 원리, 즉 천리(天理)를 보존하고 개인의 사사로운 욕구를 제거하자는 존천리, 거인욕(存天理, 去人欲)’을 강조.

천명지성(天命之性)은 본래 치우친 적이 없다. 다만 품수받은 기질(氣質)에 치우친 것이 있을 뿐이다. ()에는 어둡고 밝음, 두텁고 얄팍함의 차이가 있지만, 지는 어느 누구도 결여할 수 없는 이()이다. 단지 측은해하는 감정이 지나치면 줏대없는 유약함으로 흐르고, 부끄러워하는 감정이 지나치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 [] 네가 어떤 기()를 타고났든 이 이()는 오로지 선하기만 하다. 이 이()가 어떻게 악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악이라는 것은 기()에 의한 것이다.(天命之性, 本未嘗偏. 但氣質所稟, 卻有偏處, 氣有昏明厚薄之不同. 然仁義禮智, 亦無闕一之理. 但若惻隱多, 便流爲姑息柔懦; 若羞惡多, 便有羞惡其所不當羞惡者.[]卻看你稟得氣如何, 然此理卻只是善. 旣是此理, 如何得惡! 所謂惡者, 卻是氣也.)—󰡔주자어류󰡕 4

 

3. 마음의 수양

- ‘존덕성(尊德性)’도문학(道問學)’: ‘존덕성은 내면의 마음 수양, ‘도문학은 외면의 지적 탐구. 신유학자들은 양쪽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 주희는 도문학의 구체적 방법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제안함.

군자는 덕성을 높이고, 묻고 배우는 과정을 거친다.(君子, 尊德性而道問學.)—󰡔중용(中庸)󰡕

 

- ‘미발(未發)’이발(已發)’: 마음의 상태는 외적 자극이 없어 고요한 상태와 외적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작용을 일으킨 상태로 구분할 수 있음. 전자는 아직 작용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미발(未發)’, 후자는 이미 작용이 일어났다는 의미에서 이발(已發)’. 전자는 마음의 본모습으로서 도덕적 원리를 내용으로 하는 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후자는 마음의 구체적 작용으로서 희락과 같은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음. 마음은 본성[]과 감정[]을 통섭함. ‘심통성정(心統性情)’.

(󰡔중용󰡕에서 말한) 이발(已發)미발(未發)은 단지 마음의 작용이 이미 일어났을 때도 있고 마음의 작용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도 있음을 말한 것이다. 바야흐로 아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마음의 작용이 아직 일어나지 않아 미발이 된다. 그러나 마음이 사태에 감응하는 바가 있으면 마음의 작용이 이미 일어나 이발이 된다.(已發未發, 只是說心有已發時, 有未發時. 方其未有事時, 便是未發; 纔有所感, 便是已發.)—󰡔주자어류󰡕 62

 

- ‘존양(存養)’[‘함양(涵養)’]의 공부와 성찰(省察)’[‘심찰(審察)’]의 공부: 미발의 마음에 대해서 그 속에 젖어들어 기르는 함양(涵養)’, 또는 보존하고 기르는 존양(存養)’의 공부를, 이발의 마음에 대해서는 매순간 마음의 움직임을 세세히 살펴서 선량한 마음의 움직임을 확충하는 심찰(審察)’ 또는 성찰(省察)’의 공부가 필요함. 미발이발을 관통하여 ()’의 자세가 필요.

마음이 미발일 때에는 보존하여 기르는 존양(存養)의 공부를 해야 하고, 이발일 때에도 역시 자세히 살피는 심찰(審察)의 공부를 해야 한다. 어떤 사태에 마주하든 항상 다시 분발해야 한다. 스스로 해이해져서 방기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어느 때이든 본성을 보존하여 기르는 존양을 하고, 어떤 일에서든 마음의 작용을 잘 살피는 성찰을 해야 한다.(未發固要存養, 已發亦要審察. 遇事時時復提起, 不可自怠, 生放過底心. 無時不存養, 無事不省察.)—󰡔주자어류󰡕 62

단지 몸과 마음을 다 잡아 단정하고 순일하게 하며, 방종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 이것이 ()이다.(只收斂身心, 整齊純一, 不恁地放縱, 便是敬.)—󰡔주자어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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